바둑이를 입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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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ckenzie 작성일24-06-25 14:27 조회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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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왕’ 바둑이 이라고 불러주면 은근히 좋아한다씅이가 바둑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여름이었다. 당시 육아휴직 중이었던 나는 아이들의 시간표를 알차게 짜는 것에 집착했는데, 목요일 스피드 스케이트 강습이 끝나고 남는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참에 눈에 들어온 것이 '기원'이었다. 동네 산만한 애들은 다 한번씩 거쳐가는 곳이 바둑 학원이라던데, 혹시 우리 둥이들도 바둑을 통해 차분함이라는 것을 배우려나? 바둑이 게다가 빙상장-기원-집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기원의 문을 열었다.백발의 선생님께서 인자한 미소로 둥이들을 맞이해주셨고, 바둑의 규칙과 집의 개념, 돌 따먹는 방법 등을 알려주셨다. '바둑 그게 대체 뭔가요'하던 둥스를 어떻게 구워삶으셨는지,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재밌다고 난리였다. 주 1회 어린이 바둑교실에 아이들을 밀어넣고 나면 나에게도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니 이건 뭐 바둑이 등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선생님은 두 번째 수업에서 씅이의 사진을 보내주시며 '씅이가 바둑을 잘 할 듯 합니다'라는 첫 수업의 소감을 전해주셨다.이후에도 선생님은 둥이들을 데리러 갈 때마다 검은 소가 더 일을 잘한다고 귓속말을 하는 농부처럼 소곤소곤 씅이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 주셨다. 쌍둥이 인생 만 6년만에 쭈야를 앞서는 무언가가 생긴 씅이였다. 바둑의 매력을 알게 바둑이 된 김에 여름방학에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4주짜리 방과후 바둑 수업도 수강했다. 나는 여름 내내 방과후 바둑은 너무 쉽다고 깐족거리는 씅이를 견뎌 주어야 했다.1학년 가을. 유승이가 발목 인대를 다치면서 스피드 스케이트를 그만두게 되었고, 빙상장-기원-집으로 이어지는 동선도 어그러졌다. 바둑팝 앱을 애용하며 1학년 2학기를 보내고, 2학년 1학기 시작과 동시에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어린이 바둑교습소에 등록했다. 바둑 바둑이 용어와 수학 정의의 상관관계씅이는 사각형의 특징을 쓰는 서술형 문제에 ‘4개의 변과 귀가 있다’고 답했다.귀, 변, 중앙을 모르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씅이의 황당한 표정에 내 어이도 날아감 ㅋㅋ2학년 3월에 바둑승급심사를 통해 15급이 되었고, 2023 한국유소년바둑연맹회장배, 제12회 일요신문배 세계어린이바둑대회, 2023 경기도교육감기 바둑대회를 통해 대회 경험도 쌓았다. 어린이 대회 특성상 상장과 트로피를 남발해서, 우승을 하지는 바둑이 못하더라도 크고 작은 트로피를 받을 수 있어 기분 좋았던 씅이였다. 그리고 하남시, 평택시 협회장배 바둑대회, 제5회 대통령배 전국바둑대회에서 학년부 우승을 하면서 아이의 2학년 1학기는 바둑으로 점철되었다. 대회에서 만나는 프로기사님 싸인도 모으고, 스승의 날에는 바둑 학원 선생님께 러브레터도 쓰는 등 씅이가 바둑을 사랑하면서 바둑을 전혀 모르고 살던 나의 세계에도 바둑이 성큼 들어왔다.방과후 생태과학 시간에 바둑이 받아온 소라게 ‘바둑이’씅이는 아무데나 다 바둑을 갖다붙이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방과후 생태과학 시간에 받은 소라게의 이름까지 ‘바둑이’로 지어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둑이’라는 이름을 강아지에게 붙이긴 하는데. 아무튼 이 소라게 바둑이는 그 이름 덕분에 거두어 주기로 했고, 무사히 탈피도 하며 한동안 무럭무럭 자랐다.소라게 탈피하던 날소라게 바둑이는 코코칩 바닥재랑 쉘을 사다나르고 고오급 해수염 젤리도 먹여가며 애지중지 바둑이 길렀는데, 얼마 전 흑백의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예쁨을 많이 받았던 소라게는 씅이가 잘 묻어주었고 ’바둑이 묘‘ 라고 적힌 작은 비석도 세워주었다. 소라게 바둑이에게 주려고 새로 마련한 호주모래랑 코코넛 은신처, 다양한 크기의 쉘 등을 다 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아니 왜 이렇게 길어지지 ㅋㅋ우리집 바둑이 이야기를 쓰다가 소라게 바둑이로 흘러가는데 급 마무리하고 다음에 다시 써야겠다. 바둑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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