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창립 이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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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작성일25-06-07 21:25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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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창립 이래 2
1789년 창립이래 24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데이비드 수터만큼독특한 대법관도없을 것이다. 그는 미국 북동부의 춥고 한적한 지역인 뉴햄프셔주(州)에서태어났다.명문 하버드대 로스쿨를 졸업한 뒤대도시로펌에 입사하거나 중앙정치무대 등으로진출하는 대신 고향에서 수십년간 공직자로 소탈한 삶을 살았다. 수터가뉴햄프셔를 벗어난 것은 51세이던 1990년 조지 W H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최고 법원 구성원이 되었다는 영예도 잠시, 수터는 곧 고향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에 시달린다. 수도 워싱턴에서의 삶은 독서와 등산을 즐기는 그와는 잘 맞지 않았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연방대법원대법관을 지낸 데이비드 수터(1939∼2025). AP연합뉴스 대법관 시절 수터는 거의 매일 집무실에서 요구르트와 사과로 혼자 점심을 해결했다. 독신주의자인 그는 사교 생활을하지 않았다. 퇴근 후에 시간이 나면 달리기를즐겼다. 미국 대법원은 매년 10월 개정해 이듬해 여름까지 변론기일을 열거나심리가 끝난 사건을선고한 뒤 휴정기에 돌입한다. 그 기간이 되면 수터는뉴햄프셔로 돌아가 그동안 하지 못한독서와 등산으로 소일했다. 19년간 대법관으로 일한 수터는 2009년 결국 대법원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미국에서 연방법관은 종신직이고 당시 그의 나이 70세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기 은퇴라고 하겠다. 낙향한 수터는 책 속에 파묻혀 지내면서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 시절 대법관에 임명된 점에서 보듯 수터는 보수적 법률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막상 대법관이 된 뒤 그는 좌우를 넘나들며 중도 노선을 걸었다. 자연히 보수이념에 어긋나는 판결도 여럿 내려 공화당의 반발을 샀다. 수터는 정치권과 입법부의 사법부 개입 시도를 경계했다. 마찬가지로 법원이 정치에 관여해서도 안 된다고 봤다. 그가 대법관을 그만두기로 작정한 것은2000년 미 대선을 둘러싼 이른바‘플로리다 재개표’ 사건이1789년 창립이래 24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데이비드 수터만큼독특한 대법관도없을 것이다. 그는 미국 북동부의 춥고 한적한 지역인 뉴햄프셔주(州)에서태어났다.명문 하버드대 로스쿨를 졸업한 뒤대도시로펌에 입사하거나 중앙정치무대 등으로진출하는 대신 고향에서 수십년간 공직자로 소탈한 삶을 살았다. 수터가뉴햄프셔를 벗어난 것은 51세이던 1990년 조지 W H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최고 법원 구성원이 되었다는 영예도 잠시, 수터는 곧 고향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에 시달린다. 수도 워싱턴에서의 삶은 독서와 등산을 즐기는 그와는 잘 맞지 않았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연방대법원대법관을 지낸 데이비드 수터(1939∼2025). AP연합뉴스 대법관 시절 수터는 거의 매일 집무실에서 요구르트와 사과로 혼자 점심을 해결했다. 독신주의자인 그는 사교 생활을하지 않았다. 퇴근 후에 시간이 나면 달리기를즐겼다. 미국 대법원은 매년 10월 개정해 이듬해 여름까지 변론기일을 열거나심리가 끝난 사건을선고한 뒤 휴정기에 돌입한다. 그 기간이 되면 수터는뉴햄프셔로 돌아가 그동안 하지 못한독서와 등산으로 소일했다. 19년간 대법관으로 일한 수터는 2009년 결국 대법원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미국에서 연방법관은 종신직이고 당시 그의 나이 70세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기 은퇴라고 하겠다. 낙향한 수터는 책 속에 파묻혀 지내면서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 시절 대법관에 임명된 점에서 보듯 수터는 보수적 법률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막상 대법관이 된 뒤 그는 좌우를 넘나들며 중도 노선을 걸었다. 자연히 보수이념에 어긋나는 판결도 여럿 내려 공화당의 반발을 샀다. 수터는 정치권과 입법부의 사법부 개입 시도를 경계했다. 마찬가지로 법원이 정치에 관여해서도 안 된다고 봤다. 그가 대법관을 그만두기로 작정한 것은2000년 미 대선을 둘러싼 이른바‘플로리다 재개표’ 사건이 결정적계기가 됐다고 한다. 민주당 앨 고어 후보 측이 재개표를 강력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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